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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된 K칩스법은 세제 혜택 확대와 함께 예산 편성을 통한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자 한 정책입니다. 하지만 예산 규모, 편성 방식, 집행 속도 등 다양한 문제점이 병존하고 있어 K칩스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예산 운용 전략과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반도체 산업이 국내 수출의 약 2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전략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화되고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자국 중심의 보호와 육성 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적 대응이 요구되었으며,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바로 K칩스법입니다. K칩스법은 반도체뿐 아니라 차세대 배터리, 바이오, 인공지능 등 이른바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대한 민간의 투자 유인을 강화하기 위한 세제 혜택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 혜택을 실질화하기 위한 예산 편성 또한 함께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법안 통과만으로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해당 법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 편성의 체계성과 실행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현재까지의 흐름을 살펴보면, 정부는 K칩스법을 통해 투자세액공제를 대기업은 15%에서 20%로, 중소기업은 25%에서 30%로 상향 조정하고,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도 강화했지만, 이에 따른 국가 재정의 부담과 중복 투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각 부처 간 조율 미비, 예산 배정의 모호성, 그리고 현장 집행의 비효율성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K칩스법의 주요 내용 중 ‘예산 편성’에 초점을 맞추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향후 보완이 필요한 지점들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K칩스법과 관련된 예산 편성은 크게 두 가지 축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액공제 형태로 간접 지원되는 방식이며, 둘째는 정부가 직접 집행하는 R&D 예산과 인프라 구축 예산을 포함하는 직접 지원 방식입니다. 특히 세액공제는 기업의 투자 결정에 유연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예산이 투명하게 반영되기 어렵고 국회 차원의 통제력을 벗어난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2023년 기준으로 정부는 K칩스법의 세부 실행을 위해 약 3조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였고, 이 중 약 1조 7천억 원은 반도체 관련 인프라 및 R&D 투자에 배정되었습니다. 나머지 예산은 인력 양성, 지역 클러스터 조성, 중소기업 지원 등 다양한 분야로 분산되었지만, 그 편성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실질적인 집행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또한 부처 간 협업 구조가 아직 미흡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예를 들어,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간의 조율이 부족하여 실제 기업들이 체감하는 지원이 제도상의 약속만큼 빠르게 다가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투자 시점과 예산 집행 시점 사이의 괴리를 초래하며, 기업들이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데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체계는 더욱 정교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K칩스법은 중소기업에 대해 30%까지의 세액공제를 보장하고 있으나, 이들이 실질적으로 세제 혜택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이익 창출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결국 예산 편성과 집행에서 중소기업을 위한 별도 트랙의 설계와 정책 금융의 병행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K칩스법이 단순한 선언적 법안으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산업 구조의 미래를 선도하는 실질적 정책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예산 편성의 방식과 집행 메커니즘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선적으로, 세액공제 외에 정부가 직접 집행하는 재정 지출의 비중을 확대하고, 이들 예산의 배정 기준과 성과 지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국회 및 민간 전문가와의 협력 구조를 통해 예산의 실질 집행 여부를 검토하고, 연도별 사업 평가를 통한 예산 재조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성과 중심의 집행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정책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기술 투자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복합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인력 양성, 소재·부품 생태계, 글로벌 공급망 연계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있는 만큼, 예산 편성도 단일 항목 중심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연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K칩스법과 관련한 통합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산 편성은 단발적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성을 갖춘 구조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반도체 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과를 거두는 분야인 만큼, 1~2년 단위의 예산 편성보다는 5년 이상의 중장기 재정 전략 수립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에 따른 법적·제도적 장치도 정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K칩스법은 단순한 세제 혜택을 넘어서 대한민국 산업 미래를 실질적으로 견인하는 성장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